인터마이애미CF 구단주, 데이비드 베컴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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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미국 MLS 팀 인터마이애미CF의 구단주 데이비드 베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마이애미CF 구단주 데이비드 베컴

 

데이비드 베컴: 축구의 아이콘을 만나다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이름, 여러분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의 이름은 축구 뿐만 아니라 패션, 엔터테인먼트, 심지어 정치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축구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데이비드 베컴은 어떤 선수 생활을 하였는가

데이비드 베컴은 1975년 5월 2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축구를 사랑했고, 특히 아버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었습니다.

 

축구로의 첫걸음

10세 때 부터 이미 그의 재능은 뽐내고 있었고, 그는 잉글랜드의 유서깊은 축구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데뷔와 주목받기 시작한 순간 1992년, 데이비드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했습니다.

 

‘퍼거슨의 아이들’로서의 성과

베컴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 아래에서 뛰며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199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기록한 두 골은 모두 베컴의 코너킥이 그 시작을 알렸습니다.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6회, 챔스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를 달성합니다.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

‘갈럼티코스’와 함께한 시간 2003년, 데이비드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는 명성이 더 높았지만 아쉽게도 레알 마드리드에 소속된 기간 동안

얻은 트로피는 라리가와 스페인리그 슈퍼컵이 전부입니다.

 

LA 갤럭시와 MLS

2007년, 베컴은 LA 갤럭시로 이적하며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으로의 이동은 글로벌 아이콘으로의 도약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LA 갤럭시에서 뛰면서도 그의 인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MLS에서 베컴은 서포터즈 실드와 MLS컵을 각각 2회 우승하는데 기여합니다.

 

2010년과 2013년에는 각각 AC 밀란과 PSG에서 잠시 뛰었습니다.

PSG에서는 프랑스 리그 우승을 경험합니다.

 

 

은퇴 후 활동 - 선수에서 인터 마이애미 CF 구단주로

인터마이애미CF와의 인연 은퇴 후에는 인터마이애미CF의 구단주가 되어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거진 5년의 기간동안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를 팀에 영입하며

또다른 화재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데이비드 베컴의 축구 스타일과 영향력 축구 스타일

그의 축구 스타일은 정교한 슈팅과 패스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프리킥은 롱볼축구로 대표되던 잉글랜드 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으며

그가 선수생활을 하던 시절 소속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에서는 베컴이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패션과 문화에도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이었는데, 베컴은 패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며, 여러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했습니다.

 

데이비드 베컴은 톱모델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데이비드 베컴은 축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진정한 슈퍼스타입니다.

그가 선수생활을 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축구 관련 글에서는 거의 항상 베컴이 등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피파온라인2를 즐겨하였을 때 LA갤럭시에서 뛰던 베컴을 영입하려고 과도한 클릭짓을 했던 제 자신이 기억납니다.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났고 베컴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안타깝습니다.

 

게임으로라도 베컴의 전성기 시절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렇게 글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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